스페인 미술 500년, 뉴욕 히스패닉 소사이어티 소장품 95점이 처음 서울에
뉴욕 히스패닉 소사이어티의 컬렉션이 아시아에 처음 오는 '스페인 미술 500년: 빛과 어둠의 연대기' 전시가 9월 22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립니다. 엘 그레코와 벨라스케스, 고야, 소로야까지 95점이 들어옵니다.
9월 22일부터 1월 20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스페인 미술 500년: 빛과 어둠의 연대기' 전시가 열립니다. 허세미술관 채널은 전시 예습 영상에서 이번 전시를 예술의전당 하반기 기대작으로 꼽으며 핵심 관람 포인트를 정리했습니다. 영상에 따르면 이번 전시에는 스페인 3대 고전 화가인 엘 그레코와 벨라스케스, 고야에 빛의 화가 소로야까지 95점이 들어옵니다. 전시는 중세 종교화부터 황금기, 고야와 낭만주의, 풍속화, 20세기 모더니즘까지 여섯 개 섹션으로 500년 역사를 압축해 보여준다고 합니다.
뉴욕 맨해튼 북쪽의 보물창고, 히스패닉 소사이어티
이번 전시 작품은 뉴욕 히스패닉 소사이어티의 소장품입니다. 1908년 문을 연 이 미술관은 스페인 본토 밖에서 스페인·라틴아메리카 컬렉션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스페인 미술이 스페인 다음으로 가장 많이 소장된 곳입니다. 소장품만 50만 점가량에 이르는데, 이 컬렉션이 아시아에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영상은 이곳을 뉴욕 맨해튼 북쪽에 숨겨진 보물창고로 기억하면 된다고 소개했습니다.
이 방대한 컬렉션을 완성한 사람은 아처 헌팅턴입니다. 미국 굴지의 철도 재벌 집안 후계자였던 그는 열두 살 무렵 유럽 그랜드 투어에서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파리 루브르를 마주하며 미술에 빠졌고, 아버지를 따라간 멕시코 출장에서 스페인 문화에 매료됐습니다. 이후 스페인어와 고문헌, 역사, 회화를 홀로 공부했다고 합니다. 영상은 그를 부호의 과시형 컬렉터가 아니라 문화와 학문, 언어까지 훑은 학구파 덕후라고 설명했습니다. 헌팅턴은 서른네 살이던 1904년 뉴욕 맨해튼 북부에 오직 스페인과 라틴 문화만을 기리는 전당을 세웠고, 1908년 정식 개관했습니다.
르네상스 스페인과 톨레도의 화가 엘 그레코
영상 진행자는 공개된 전시 테마와 별개로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첫 테마를 '고립된 스페인의 르네상스'로 잡았습니다. 1492년 이사벨 여왕이 스페인을 통일하고 콜럼버스를 신대륙으로 보낸 뒤, 변방 취급을 받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의 선두 주자로 올라섰고 스페인은 16세기 무적함대를 거느리며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폐쇄적인 기독교 문화와 순혈주의가 강해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닫힌 나라였고, 당시 스페인 화가들은 대부분 중세부터 이어진 종교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무력은 최강이었지만 그림은 수입하거나 외국 화가를 들여와 그리게 했다는 설명입니다.
이때 르네상스 말기 이탈리아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던 그리스 출신 화가가 톨레도에 정착합니다. 바로 엘 그레코입니다. 진행자는 그가 전성기를 톨레도에서 맞은 만큼 사실상 스페인 화가, 정확히는 톨레도 화가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럽에서 가장 폐쇄적인 종교 도시였던 톨레도에서 오히려 시대를 앞서 나간 그림이 나왔다는 점이 아이러니라는 것입니다. 뒤틀린 인체와 기괴한 색채가 특징인 그의 그림은 굉장히 현대적이어서 1차 세계대전 무렵의 독일 표현주의를 예고하는 느낌을 주며, 피카소도 엘 그레코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았고 '아비뇽의 처녀들'에 직접적인 영감을 준 것도 엘 그레코의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습니다. 엘 그레코는 원래 스페인의 궁정 화가가 되고 싶어 했지만, 당시 국왕 펠리페 2세에게 잘 보이려고 그린 첫 왕실 작품이 거절당했습니다. 이후 톨레도 대주교좌가 있는 대성당 쪽으로 눈을 돌려 평생 갈 고객들을 만났습니다. 진행자는 어떤 작품이 모두 오는지는 아직 모른다면서도 이번에 엘 그레코 그림이 꽤 오는 것 같다며 작품들을 하나씩 짚었습니다.
1585년 작 '성 가족'은 성모가 쓴 얇고 비치는 레이스 베일을 유화로 표현한 붓질이 난이도 최상급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아기 예수에게 직접 수유하는 '수유하는 마리아' 도상은 도상 하나하나를 신학적으로 검열하던 반종교개혁 시기 스페인 톨레도에서는 이례적인 사례라는 설명입니다. 1574~1576년 사이 로마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두 점의 구도를 판화로 보고 모방한 작품으로, 거장이 되기 전 로마에서 연습하던 시절의 엘 그레코를 보여줍니다. 1600년 작 '참회하는 성 히에로니무스'에서는 빨간 모자와 빨간 옷, 해골, 십자가 같은 전형적인 도상을 볼 수 있으며, 해골과 모래시계는 인생의 덧없음, 즉 메멘토 모리를, 책과 펜은 학문적 업적을 상징합니다.
플랑드르 출신의 합스부르크 왕실 초상화가 안토니스 모르가 그린 '알바 공작 페르난도 알바레스 초상'도 소개됐습니다. 모델인 3대 알바 공작은 네덜란드 총독으로 부임해 신교도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인물로 '철의 공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진행자는 갑옷의 섬세한 금속 디테일을 보는 재미를 느껴보라고 권했습니다.
17세기 황금시대와 벨라스케스의 리얼리즘
진행자가 꼽은 다음 테마는 17세기 스페인의 황금시대입니다. 스페인은 무적함대가 침몰한 지 오래였고 계속된 전쟁과 재정 파탄으로 정치·경제적으로 내리막이었지만, 예술은 정반대로 폭발했습니다. 왕실 궁정 화가 벨라스케스와 세비야 출신의 수르바란, 무리요 같은 거장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문화적으로 정점을 찍은 시기라는 설명입니다.
세비야 출신으로 펠리페 4세의 궁정 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프라도 미술관의 간판 화가입니다. '추기경 카밀로 아스타리-팜필리의 초상'은 그가 1650년 로마 출장 때 그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모델인 카밀로 아스타리는 교황의 조카가 추기경 자리를 버리고 결혼하자 그 빈자리를 채우며 교황에게서 팜필리라는 성을 받은 벼락출세의 주인공이었지만, 몇 년 만에 모든 지위와 가문 성을 박탈당하고 로마에서 쫓겨났습니다. 진행자는 모자를 살짝 삐뚤게 쓴 모습이 재밌다며, 이전 르네상스 시대와 비교하면 정말 사진처럼 자연스러운 빛을 구사하는 것이 벨라스케스의 리얼리즘 스타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히스패닉 소사이어티의 모나리자 같은 존재로 꼽히는 벨라스케스의 1640년 작 '어린 소녀의 초상'도 소개됐습니다. 평생 주로 왕실 가족이나 궁정 인물을 그린 화가가 왕족이 아닌 어린이를 단독으로 그린 유일한 초상화로, 재고 목록에 '소녀 한 명'이라고만 적혀 있어 아직도 누구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많은 학자들은 벨라스케스의 손녀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다만 진행자는 이 작품은 간판 그림이라 이번에 빌려주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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