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미술관 개관전 리뷰, 90년대 작품과 묘법 시리즈의 변화를 담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나무와 수풀이 어우러진 정원 풍경
한국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의 예술적 발자취를 기리는 '박서보미술관'이 서울 연희동에 문을 열었습니다. 허세미술관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이번 미술관은 작가의 생전 작업실 바로 옆에 위치하여 그의 마지막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개관전인 '박서보와 흥 도딘: 비움 그 충만'을 중심으로 미술관의 건축적 특징과 작가의 작품 세계 변화를 살펴봅니다.
연희동에 자리 잡은 박서보의 흔적과 미술관의 공간 구성
박서보미술관은 작가가 생전 활동했던 작업실 인근에 위치하며, 2026년 8월 21일 개관했습니다. 당초 소규모 기념관으로 기획되었으나, 작가의 공립미술관 건립 무산과 부지 추가 확보가 맞물리며 현재의 규모로 확장되었습니다. 채문규 건축가가 설계한 이 건물은 2층부터 3층까지 총 5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층마다 정원이 배치되어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지하에서 시작해 위로 올라가는 동선은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생명력이 위로 뻗어 나가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전시 공간은 세 곳의 '스페이스'로 나뉩니다. 지하 2층 '스페이스 제로(SPACE Ø)'에서는 박서보와 베트남 출신 화가 흥 도딘의 1990년대 작품을 나란히 전시합니다. 두 작가는 미니멀리즘적 성향을 공유하지만, 표현 방식은 상반됩니다. 박서보가 젖은 한지를 밀어내며 선을 만드는 방식이라면, 흥 도딘은 광물 안료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2층 '스페이스 2(SPACE 2)'는 박서보의 흑백 한지 묘법에서 색채 한지 묘법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3층 '스페이스 3(SPACE 3)'은 8m 높이의 큐브 공간을 활용해 '마지막 흰색'을 주제로 한 전시가 진행됩니다.
흥 도딘과의 만남과 박서보 묘법의 예술적 변천사
이번 개관전이 특이한 점은 박서보의 개인전이 아닌, 그가 세상을 떠나기 세 달 전 만났던 베트남 출신 화가 흥 도딘과의 이인전(二人展)이라는 점입니다. 흥 도딘은 7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미술계에 등장한 극적인 서사를 가진 작가로, 화학 첨가물 없이 직접 갈아 만든 안료를 천 위에 겹겹이 쌓아 올리는 독특한 작업 방식을 고수합니다. 두 작가는 '반복과 절제'라는 단색화적 공통점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재료와 방법론으로 화면을 구성합니다.
박서보 화백의 작품 세계는 시대에 따라 극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담은 초기 '앵포르멜' 시기에는 거칠고 어두운 질감의 비정형적 회화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1956년 당시 최고의 권위였던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국전)에 반기를 들었던 '반국전' 선언은 그가 기성 미술계에 도전하던 예술가였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원형질'과 '유전질' 시리즈를 거치며 색과 형태의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1967년부터 시작된 '묘법(Ecriture)' 시리즈는 아들이 글씨를 쓰다 종이를 마구 긋는 낙서 행위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쓰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후 연필 묘법을 지나 한지의 결을 이용한 묘법, 그리고 2000년 일본 후쿠시마의 단풍에서 영감을 받은 색채 묘법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미술관 공간의 아쉬움과 예술적 평가에 대한 고찰
영상에서는 미술관의 공간적 완성도에 대해 일부 아쉬운 점을 언급합니다. 3층 큐브 공간의 경우, 조선 백자나 삼베의 자연스러운 흰 빛을 재현하려 했으나, 실제로는 신축 건물의 인공적인 회색 톤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재단 측은 조선 백자나 삼베의 흰 빛을 담고자 했으나, 영상에서는 도자기의 은은한 빛보다는 회색 비석을 올려놓은 듯한 인공적인 느낌이 든다는 점을 지적하며, 향후 공간의 향기(조향) 등을 통해 보완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또한, 개관전의 구성이 작가의 전체 생애를 조명하기에는 다소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현재 전시에는 작가의 초기 앵포르멜이나 연필 묘법 시리즈가 빠져 있어,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50년을 모두 보여주는 국제갤러리의 회고전과 비교하면 폭이 좁다는 평가입니다. 작가의 후기 작업에 대해서는 비평적 시각도 함께 제시됩니다.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며 대중적 협업을 이어온 행보가 미술 시장에서 큰 의미를 갖지만, 한편으로는 획기적인 변화 없이 작업 방식이 대량 생산에 가까운 상업적 화풍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하지만 박서보미술관 측은 이곳이 단순히 작가를 기리는 곳을 넘어, 그가 평생 실천해온 '젊은 작가 발굴과 교육'이라는 가치를 이어가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신진 작가 기획전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박서보의 예술 정신을 계승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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