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11년 만의 최악 산불...대통령 '불법 소각은 생태 테러'
1~7월 20만2,000ha 소실...호흡기 환자 8일 만에 122.7% 증가

인도네시아가 11년 만에 가장 심각한 산불과 연무 피해를 겪고 있다. 보르네오와 수마트라섬을 중심으로 확산한 산불 연기는 국경을 넘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대기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17일 불을 이용해 산림과 농경지를 개간하는 행위를 '생태 테러'로 규정하고 처벌 강화를 지시했다. 개인뿐 아니라 책임이 있는 기업도 수사하고, 불을 이용한 토지 개간을 일부 허용해온 지방 규정도 재검토하도록 했다.
산불 피해가 급증한 배경에는 강력한 엘니뇨와 장기간 이어진 고온·가뭄이 있다. 엘니뇨가 산불을 직접 일으킨 것은 아니다. 농지와 팜유 농장 조성을 위한 불법·관행적 소각이 건조한 기후와 결합하면서 대형 화재로 번진 것으로 분석된다.
1~7월 20만2,000ha 소실...서울 면적의 3.3배
인도네시아 정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산불로 약 20만2,000ha가 불탔다. 2,020㎢에 해당하는 면적으로 서울시 면적 약 605㎢의 3.3배가 넘는다.
환경단체 야야산 콘세르바시 알람 누산타라(YKAN)는 8월 산불 피해 면적을 약 60만ha로 추정했다. 정부의 1~7월 통계와 YKAN의 8월 추정치를 산술적으로 합하면 약 80만ha지만, 집계기관과 조사 방법이 달라 이를 하나의 정부 공식 통계처럼 표현해서는 안 된다.
7월 한 달 피해 면적은 약 9만4,000ha로 파악됐다. 1~7월 전체 피해의 약 46.5%가 7월에 집중된 셈으로, 건기가 본격화하면서 산불이 빠르게 확산했음을 보여준다.
| 집계 구분 | 피해 면적 | 비고 |
|---|---|---|
| 1~7월 정부 집계 | 20만2,000ha | 7월 피해 포함 |
| 7월 피해 | 약 9만4,000ha | 1~7월 통계의 일부 |
| 8월 YKAN 추정 | 약 60만ha | 환경단체 추정치 |
※ 집계기관과 조사 방식이 다르며, 7월 수치는 1~7월 정부 통계에 이미 포함돼 있다. 세 항목을 합산해서는 안 된다.
항공기 50여 대 투입...지하에서 타는 이탄지 산불
인도네시아 정부는 물 투하와 인공강우 작업을 위해 항공기 50여 대를 투입했다. 일본도 CH-47 치누크 헬기 3대를 보내 진화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산불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상당수가 이탄지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탄은 식물 잔해가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 채 오랜 기간 쌓인 유기물층이다.
건조해진 이탄층에 불이 붙으면 불길이 지표 아래로 번지면서 수주 또는 수개월 동안 이어질 수 있다. 겉으로 불이 꺼진 것처럼 보여도 지하에 남아 있던 불씨가 다시 지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연소 과정에서는 온실가스와 초미세먼지, 일산화탄소 등 유해물질이 배출된다. 연무가 계절풍을 따라 이동하면 피해는 인접 국가까지 번지는 초국경 환경재난으로 확대된다.
호흡기 환자 8일 만에 122.7% 증가
인도네시아 보건부에 따르면 피해가 집중된 7개 주에서 연기에 노출된 주민은 약 1,250만명에 달한다.
호흡기 질환자는 9월 1일 5만891명에서 9일 11만3,336명으로 증가했다. 8일 만에 6만2,445명, 비율로는 약 122.7% 늘어난 것이다.
| 날짜 | 환자 수 | 변화 |
|---|---|---|
| 9월 1일 | 5만891명 | - |
| 9월 9일 | 11만3,336명 | 6만2,445명 증가 |
| 증가율 | - | 약 122.7% |
정부는 마스크 약 100만장과 산소발생기 등을 피해 지역에 보내고 의료 인력을 배치했다. 서칼리만탄주 폰티아낙 등에서는 짙은 연기로 가시거리가 크게 떨어지면서 항공편과 주민 생활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학교 폐쇄와 수업 중단으로 피해를 본 학생도 14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일주일간 화재 관련 가스 1,970만톤 배출
유럽연합 코페르니쿠스 기후감시서비스 자료를 인용한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는 9월 7일까지 일주일 동안 약 1,970만톤의 화재 관련 가스가 배출됐다. 같은 기간 전 세계 산불 관련 배출량의 3분의 1을 넘는 규모다.
다만 1,970만톤을 전부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해당 수치는 산불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종류의 화재 관련 가스를 환산한 배출량이다.
오랑우탄 연구기지 200m 앞까지 번진 불길

산불은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서식지까지 위협하고 있다. 보르네오 구눙팔룽 국립공원의 랑콩 연구기지 인근에서는 불길이 시설에서 약 200m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했다.
랑콩은 카방판티 연구센터의 위성 연구기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야생 보르네오오랑우탄 연구지역 가운데 하나다. 연구진과 지역 주민 등 40여 명은 연구기지 주변에 방화선을 만들고 임시 살수시설을 구축해 불길을 막고 있다.
구눙팔룽 국립공원에는 약 2,500마리의 오랑우탄이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연구 대상 오랑우탄이 불길을 피해 이동하는 모습도 관찰됐다.
오랑우탄은 넓은 산림을 필요로 하고 번식 속도가 느리다. 산불로 서식지가 조각나면 먹이 부족과 개체군 고립이 발생할 수 있다. 불길을 피해 농장이나 마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충돌할 위험도 커진다.
형사사건 219건...기업 95곳 조사
인도네시아 경찰은 산불과 불법 소각을 둘러싸고 219건의 형사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9월 16일 기준 162명이 피의자로 지목됐으며 기업 95곳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기업 95곳 모두가 피의자나 유죄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다. 현재는 수사 또는 조사 대상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실제 수사의 관건은 최초 발화 원인과 책임 주체를 입증하는 것이다. 여러 지역에서 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지하 이탄층을 따라 이동하면 최초 발화 지점을 찾기 어렵다. 토지 소유자와 실제 경작자, 기업과 하청업체 사이의 책임 관계도 복잡하다.
산불 11월 초까지 이어질 가능성
라자 줄리 안토니 인도네시아 산림부 장관은 우기가 예상보다 늦게 시작되면서 산불이 11월 초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불법 소각 단속과 항공 진화만으로는 산불을 근본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수로를 설치해 물을 빼고 농장으로 바꾼 이탄지는 건기에 거대한 가연성 지대로 변한다.
전문가들은 이탄지 수위를 회복하고 배수로를 차단하는 복원 사업, 기업의 토지 이용에 대한 상시 감시, 소각을 대체할 농지 정비 지원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생태 테러'라는 대통령의 강경 발언이 실제 기업 처벌과 토지 관리 개혁으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이번 산불은 기후 이상과 불법 소각, 팜유 농장 개발, 취약한 산림 관리가 결합할 경우 환경 문제가 보건·경제·외교 위기로 확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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