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도시 전체가 한 달간 ‘주 4일’로 움직였다…발렌시아 실험이 남긴 것
스트레스·수면·대기질 개선됐지만 상점 매출과 의료서비스에는 부담…전국 주 4일제로 이어지지는 않아

스페인 동부 도시 발렌시아는 2023년 봄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이례적인 실험을 진행했다. 4주 연속으로 월요일을 휴일로 배치해 시민들이 매주 나흘만 출근하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실험 결과 근로자들의 스트레스가 줄고 수면과 운동 시간이 늘었으며, 도심 교통량과 대기오염도 감소했다. 그러나 소매업 매출 감소와 의료서비스 과부하 같은 부작용도 나타났다.
약 3년이 지난 현재 스페인이 이 실험을 전국적인 주 4일제로 연결한 것은 아니다. 기업과 지역별 실험은 이어지고 있지만, 중앙정부가 추진한 주 37.5시간제 법안은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공휴일 재배치해 만든 ‘도시 자연실험’
실험을 추진한 곳은 당시 호안 리보(Joan Ribó) 시장이 이끌던 발렌시아시 정부였다. 시 산하 혁신기관인 라스 나베스 재단(Fundación Las Naves)이 조사와 평가를 담당했다.
발렌시아시는 2023년 부활절 월요일인 4월10일, 산 비센테 페레르 축일인 4월17일, 노동절인 5월1일에 더해 4월24일을 지방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4월10일부터 5월7일까지 네 차례 연속 월요일이 휴일이 됐다.
이는 기업별 근로계약을 바꾸거나 주 40시간을 주 32시간으로 영구 단축한 실험은 아니었다. 공휴일을 조정해 ‘4주 연속 주 4일 근무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한 도시 차원의 자연실험이었다.
발렌시아시도 공식 보고서에서 연간 총 근로시간이 줄지 않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근로시간 단축 실험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생산성도 직접 측정하지 않았다.
다만 약 36만 명의 근로자가 영향을 받는 도시 규모의 실험을 통해 휴일이 하루 늘었을 때 건강과 시간 사용, 교통, 환경, 지역경제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관련 내용은 발렌시아 주 4일제 평가보고서에 담겼다.
발렌시아시는 왜 실험했나
발렌시아시가 확인하려 한 것은 시민의 건강과 삶의 질, 기후와 도시환경, 지역경제 등 세 가지였다.
출퇴근과 노동에 쓰는 시간이 줄면 스트레스와 피로가 감소하고 운동·수면·가족 돌봄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지, 자동차 교통량과 대기오염 및 에너지 소비가 감소하는지를 살펴봤다.
휴일 증가가 관광·외식·문화산업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상점과 의료·돌봄처럼 지속적인 운영이 필요한 분야에는 부담을 줄 가능성도 조사했다.
호안 리보 당시 시장은 교통량과 온실가스, 대기오염, 소음뿐 아니라 외식·관광·상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발렌시아시는 이를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최초의 월간 주 32시간 실험으로 소개했다. 자세한 실험 설계는 발렌시아시 공식 발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민 2,100명과 도시 데이터 분석
평가팀은 발렌시아 시민 2,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주요 이해관계자 11명을 인터뷰했다. 여러 업종의 기업이 참여하는 집단토론도 진행했다.
환경 분야에서는 도로 자동차 교통량과 시내버스 이용량, 자전거 통행량, 12개 측정소의 이산화질소와 미세먼지 농도, 라스 나베스 공공건물의 에너지 소비량 등을 분석했다.
잠 늘고 스트레스 줄어…건강지표 긍정적
주 4일 근무를 경험한 응답자의 34.9%는 평소보다 스트레스가 감소했다고 답했다. 64%는 주 5일 근무 때보다 잠을 더 오래 잤으며, 37.7%는 운동량이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집에서 만든 음식을 더 많이 먹었다는 응답도 35.5%였다.

각 수치는 서로 다른 설문 문항의 응답률이므로 합계 100%를 구성하지 않는다.
| 건강·생활 지표 | 응답 비율 |
|---|---|
| 평소보다 더 오래 수면 | 64.0% |
| 평소보다 운동량 증가 | 37.7% |
| 스트레스 감소 | 34.9% |
| 집에서 만든 음식 섭취 증가 | 35.5% |
| 공원·정원·자연 방문 증가 | 48.1% |
| 자녀와 여가 활동 증가 | 45.1% |
| 자신의 건강이 ‘매우 좋다’고 평가 | 40.8% |
| 주 4일제를 7∼10점으로 평가 | 65.0% |
자신의 건강이 ‘매우 좋다’고 평가한 비율은 주 4일 근무 집단에서 40.8%로 나타났다. 주 4일 근무를 경험하지 않은 집단의 25.7%보다 15.1%포인트 높았다.
늘어난 시간은 가족과 친구, 자녀 돌봄, 독서와 공부, 문화생활에도 사용됐다. 다만 여성은 남성보다 가족 돌봄에, 남성은 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경향이 나타나 휴일 증가만으로 돌봄의 성별 격차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술과 담배 소비는 오히려 증가
휴일 증가가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만 준 것은 아니다. 평소 술을 마시는 참여자 가운데 24.5%는 실험 기간 음주량이 늘었다고 답했다. 흡연자의 15.6%도 담배 소비가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 항목 | 증가 | 변화 없음 | 감소 |
|---|---|---|---|
| 음주 | 24.5% | 69.1% | 4.2% |
| 흡연 | 15.6% | 73.7% | 7.3% |
출근 없는 월요일, 교통량과 대기오염 감소

네 차례의 휴일 월요일이 끝난 뒤 맞은 정상 근무 월요일에는 자동차 교통량과 시내버스 이용량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정상 근무 월요일의 시내버스 이용량은 휴일 월요일 평균보다 133% 많았고, 대기 중 이산화질소 농도도 58% 높았다.
| 비교 지표 | 정상 근무 월요일이 높은 비율 |
|---|---|
| 시내버스 이용량 | 133% |
| 이산화질소(NO₂) | 58% |
| 미세먼지 PM10 | 15% |
| 초미세먼지 PM2.5 | 13% |
| 라스 나베스 건물 월요일 에너지 사용량 | 30.7% |
이를 ‘주 4일제가 대기오염을 58% 줄였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정상 근무 월요일의 수치가 휴일 월요일 평균보다 58% 높았다는 의미이며, 날씨와 계절, 휴일 이동 등 다른 요인이 충분히 통제되지 않았다.
에너지 소비 역시 공공건물 한 곳에서만 측정됐다. 주거용 건물에서는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 소비가 증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소음도 자료 부족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외식·관광업은 웃고, 상점과 의료현장은 부담
외식·관광·레저업은 휴일 증가의 혜택을 받았다. 주 4일 근무를 경험한 시민 중 49.7%가 외식이나 여행, 여가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소매업계는 실험 기간 매출이 약 20%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평가보고서는 이 수치의 계산 방법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명시했다. 월요일 매출 비중이 높은 상점이 특히 큰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월요일 1차 진료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응급실로 환자가 몰렸고, 방문 돌봄을 받는 고령자에게 서비스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시간제로 일하는 일부 돌봄 노동자는 근무시간 감소만큼 급여가 줄었다.
“생산성이 유지됐다”는 결론은 내릴 수 없어
일부 보도는 발렌시아 사례를 ‘임금 100%, 근로시간 80%, 생산성 100%’ 모델의 성공 사례로 소개했다. 그러나 발렌시아 연구진은 기업 생산성을 직접 조사하지 않았다.
기업들이 근로계약을 주 40시간에서 32시간으로 영구 변경한 것도 아니다. 연간 총 근로시간은 그대로였고 공휴일을 재배치한 실험이었다.
실험 기간도 4주에 불과하고 장기 비교자료가 부족했다. 보고서 역시 결과를 확정된 인과관계가 아니라 향후 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경향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스페인은 실험 결과를 어떻게 반영했나
발렌시아 자치정부는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을 주 4일 또는 32시간으로 줄이고 생산성을 개선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보조금 사업을 이어갔다. 2025년에도 관련 지원사업의 운영 근거와 모집 공고가 발표됐다.
다만 이 기업 지원제도는 발렌시아시 실험보다 앞서 추진된 별도 정책이다. 도시 실험의 결과만으로 새롭게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앙정부는 주 4일·32시간제를 전국에 즉시 도입하기보다 법정 최대 근로시간을 임금 삭감 없이 주 40시간에서 37.5시간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했다.

정부와 주요 노동조합은 2024년 말 주 37.5시간제에 합의했고, 스페인 각료회의는 2025년 5월 관련 법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하원에서 국민당·복스·카탈루냐 정당 훈츠가 반대하면서 법안은 본회의 논의 단계로 들어가지 못했다. 표결 결과는 찬성 170표, 반대 178표였다.
반대 측은 중소기업과 농업·서비스업의 인건비 부담, 고용 감소 가능성을 문제로 제기했다. 욜란다 디아스 노동부 장관은 재추진 방침을 밝혔지만, 현재 스페인의 일반적인 법정 최대 근로시간은 여전히 주 40시간이다. 관련 의회 표결은 로이터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론은 ‘가능하다’가 아니라 ‘설계가 중요하다’
발렌시아 실험은 짧은 근무주간이 시민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줄이고 가족·운동·수면에 더 많은 시간을 제공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출퇴근 교통과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을 줄일 수 있다는 신호도 확인됐다.
반면 누가 쉬고 누가 추가로 일해야 하는지, 소득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의료·돌봄·상업처럼 연속 운영이 필요한 분야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라는 과제도 드러냈다.
결국 스페인이 발렌시아 실험에서 받아들인 메시지는 전 국민이 일제히 금요일이나 월요일에 쉬자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근로시간 단축은 건강과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임금 보전, 생산성 개선, 교대인력 확충, 중소기업 지원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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