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묘를 키우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겉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고양이들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스트레스를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억제하는 습성이 강해, 보호자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방치할 경우 행동 이상, 식욕 부진, 질병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고양이 관련 단체는 “고양이는 민감하고 환경 변화에 매우 취약한 동물”이라며, 보호자가 반드시 인지해야 할 주요 스트레스 요인을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첫째는 환경 변화다. 이사, 인테리어 공사, 가구 재배치, 새로운 사람이나 동물의 등장 등 생활 공간의 변화는 고양이에게 심각한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다.
고양이는 본래 자신만의 영역을 중시하는 동물로, 낯선 공간이나 구조적 변화가 있으면 일정 기간 숨어 지내거나 식욕이 떨어지는 반응을 보인다.
둘째는 소음과 진동이다. 청각이 민감한 고양이에게 청소기, 드라이기, 음악 소리, TV 음량, 공사 소음은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장시간 반복되는 소음은 만성적 스트레스로 축적돼, 배변 실수나 잦은 그루밍(과도한 털 핥기) 등의 행동 이상을 초래하기도 한다.
셋째는 다묘 가정 또는 타동물과의 갈등이다. 같은 집에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경우, 사회적 위계나 영역 갈등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심화되는 사례가 많다.
보호자는 고양이들이 평화롭게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화장실 앞에서의 대치, 먹이 자리에서의 양보, 특정 개체의 은신 증가 등 미세한 행동 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간혹 강아지, 앵무새, 고슴도치 등 다른 종과 함께 지내는 것도 고양이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넷째는 화장실 및 물, 사료 관련 문제다. 청결하지 않은 화장실, 급격한 사료 교체, 급수기 고장 등은 고양이에게 즉각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특히 모래의 종류 변경이나 화장실 위치 변경, 급수기의 물이 오래되어 신선하지 않을 경우 고양이는 물을 마시지 않거나 배변을 거부하는 행동을 보일 수 있다.
다섯째는 과도한 접촉이나 억지스러운 행동 유도다. 일부 보호자는 고양이를 과도하게 쓰다듬거나, 안기는 것을 싫어하는 고양이를 억지로 품에 안으려는 행동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고양이는 스킨십을 스스로 선택하고 조절하려는 욕구가 강한 동물로, 이 같은 상황은 신뢰감 저하 및 회피 행동으로 이어진다.
여섯째는 지루함이다.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고양이의 경우, 환경 자극 부족이 큰 스트레스 원인이 될 수 있다.
장시간 집을 비우는 보호자나 놀이가 부족한 환경은 고양이의 무기력, 과식, 반복 행동 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를 ‘실내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분류하는 수의사도 있다.
서울 동물병원 수의사는 “최근에 내원한 고양이 환자 중 30% 이상이 스트레스성 행동 문제를 겪고 있다”며 “특히 배뇨 이상, 잦은 구토, 특정 부위의 털을 반복적으로 핥는 증상은 스트레스를 의심할 수 있는 주요 지표”라고 설명했다.
국내 수의과대학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반려묘의 스트레스는 단기적으론 행동 변화로 나타나지만, 장기적으로는 하부 요로 질환, 피부병, 면역력 저하 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양이 특발성 방광염(FIC)은 대표적인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반려묘의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권장하고 있다.
▲은신처 제공 : 캣타워, 박스, 침대 아래 등 고양이가 숨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
▲수직 공간 확보: 높은 곳에서 주변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해 안정감 제공
▲놀이 시간 확보: 하루 최소 15~20분 이상 보호자와 장난감 놀이
▲페로몬 제품 사용: 고양이 안정에 도움을 주는 합성 페로몬 디퓨저 활용
▲환경 변화 최소화: 가구 재배치나 이사 시 점진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
▲충분한 화장실 수: 고양이 수 + 1개 이상 화장실 설치
수의사는 이어 “고양이는 고통을 잘 표현하지 않는 특성이 있어, 보호자가 먼저 행동과 표정, 식습관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며 “스트레스를 조기에 발견하고 환경을 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예방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