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

기사입력 : 2017.08.11 20:21
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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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팸타임스 이경한 기자 ]


랩 음악, 블링블링, 조던 운동화, 그라피티, 콘로우는 힙합과 관련된 용어다. 특히 랩 음악의 에미넴, 스눕독, 닥터 드레, 투팍 샤쿠르, 악명 높은 빅토리아, NWA, 우탕클랜 등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힙합은 음악, 춤 및 악세서리 등에 널리 퍼져 있다. 힙합은 라이프스타일, 운동, 문화다.

‘힙합’이라는 단어는 1978년의 음악가 키스 위긴스가 최근 입대한 군인 친구가 행진하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힙, 합, 힙, 합" 이라고 놀려대는 과정에 탄생했다. 처음에는 군인을 놀리는 의미로 만들어진 이 단어는 곧 새로운 음악과 문화와 연결됐다.

힙합이 곧 랩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관련성이 깊지만 사실 힙합은 디제이, 턴테이블, 랩(또는 라임), 그라피티와 비보이의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다.

미국에서 가난한 흑인계 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욕의 사우스 브롱크스 지역은 70년대 후반에 힙합의 발생지로 종종 기록된다.

길가의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와 비보이의 브레이크 댄스는 힙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여전히 대중의 인기가 많은 요소다.

그라피티는 1972년에 뉴욕시 지하철역의 벽 전체에 한 십대 소년이 "Taki 183"(그의 이름과 183 번가의 조합) 이라고 낙서하며 시작됐다.

3년 후, 뉴욕의 브롱크스, 퀸즈, 브루클린의 청소년들은 기차역을 침범하여 만화책과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그림과 자신의 이름을 혼합한 화려한 낙서를 그렸다.

점점 늘어나는 무분별한 낙서를 단속하기 위해 뉴욕시 교통 당국은 개, 철조망, 페인트 제거제를 휴대하고 다니는 비밀 경찰단을 운영했다.

18세의 소년 디제이 쿨 허크는 자메이카의 대형 사운드 시스템을 도심의 여러 파티에 도입하여 최초의 힙합 디제이로 활동했다.

두 개의 턴테이블을 통해 쿨 허크는 클래식 타악기와 인기있는 댄스 곡을 융합시켜 다양한 사운드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는 그랜드 위저드 시어도어, 아프리카 밤바타,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와 함께 즉흥 공연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브레이크 비트(드럼을 제외한 모든 사운드가 제거된 레코드의 일부)를 확장하여 브레이크 댄싱의 기초를 구성했다.

브레이크 댄싱은 힙합 문화의 역동적인 리듬 스타일의 댄스다. 1930년대의 거리 무용, 무술, 러시아 민속 춤, 캘리포니아 펑크, 제임스 브라운과 마이클 잭슨의 춤 동작과 같이 다양한 문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사진 :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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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디제이의 기술은 점점 다양해졌다. 이 기술들 중에는 그랜드마스터 플래시가 고안한 턴테이블 바늘을 떨어 뜨리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두 장의 비닐 레코드를 동시에 연주하고 한쪽의 바늘을 옮겨 브레이크 비트를 시작하는 기술이다. 또한, 스크래칭 기술은 비닐 레코드를 앞뒤로 흔들어 리듬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랩은 1979년 출시된 슈거힐 갱의 ‘래퍼스 딜라잇’을 통해 대중에 알려졌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와 퓨리어스 파이브, 커티스 블로우, 콜드 크러시 브라더즈는 랩의 주요 창시자로 여겨진다.

더그 프레시는 비트박스를 대중에 소개했다. 랩에 자주 쓰이는 이 보컬 퍼커션 기법은 가수가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하여 드럼 및 기타 타악기 소리를 내는 예술이다. 입을 사용하여 비트 또는 리듬을 설정하는 데 중점을 둔다.

‘뉴 스쿨’ 이라고 불리는 80년대의 시기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래퍼들이 등장했다. 독특한 스타일로 에어로스미스의 '워크 디스 웨이' 를 편곡한 것으로 유명해진 흑인계 미국인 세 명이의 그룹 런-DMC는 대중에 랩을 널리 알리며 혁명의 선두에 섰다.

이어 ‘최초의 랩 슈퍼 스타’로 칭송받는 데프 잼의 LL 쿨 J,디지털 샘플링을 대중화한 비스티 보이즈와 퍼블릭 에너미가 이 혁명의 흐름에 합류했다.

반면, 남성 래퍼들뿐만 아니라 퀸 라티파와 솔트 앤 페퍼와 같은 여성 랩퍼들도 등장했다.

하지만 뉴욕에서 창시된 힙합은 로스엔젤레스에서 N.W.A.가 1989년에 출시한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 을 통해 가장 중요한 반응을 얻었다.

아이스 큐브, 닥터 드레, 그리고 이지 이가 결성한 이 단체는 1990년대 초의 랩의 성장을 주도했다. 실제로 그들의 스타일은 '갱스터 랩' 이라고 알려져 있다.

닥터 드레, 스눕 독, 투팍 샤커를 중심으로 설립되된 로스 앤젤레스의 데스 로우 레코드사는 뉴욕의 배드 보이 레코드사와 경쟁을 벌였다. 결국 이 경쟁은 동부와 서부 출신 래퍼 사이의 적대감을 높였고, 투팍과 노토리어스 빅은 총에 맞아 사망했다.

1990년대 말, 우탕클랜은 신이슬람의 신비주의 및 쿵후 지식을 결합해 인기를 끌었다.

이후 힙합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팝 음악 장르가 되었으며, MTV, 더 박스에 이 상품들을 특색으로 삼은 힙합 아티스트 덕분에 패션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판매량의 촉매 역할을 했다.

2000년대 초반 아웃캐스트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의 성공으로 힙합 문화의 창조적 핵심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주베나일, 8볼 앤 MJG 및 쓰리 6 마피아의 주도 하에 '더티 사우스' 라고 불리는 남부 힙학 음악 스타일이 대중에 공개됐다.

닥터 드레는 거의 10년간 새로운 브랜드의 헤드폰을 제작하느라 활동을 잠시 중단했지만, 그는 여전히 50센트와 에미넴의 성공을 통해 힙합 문화적으로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비록 힙합의 역사는 동부와 서부에서 발전되어 왔지만, 현재 힙합의 거물로 여겨지는 T.I.와 릴 웨인은 모두 남부 출신이다.



이경한 기자 fam1@pc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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